1. 그림 잘 그리시겠네요?-미술과 미술사학과저는 D대학 미술사학과와 동대학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나와 석사학위를 땄습니다.
라고 제 소개를 하면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아~ 그럼 그림 잘 그리시겠네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대략 95%의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 오프라인때도 그랬고 소개팅때도 그랬고, 번개팅을 해도 꼭 저렇게 물어보시더군요. 심지어는 이곳 미국에 와서도 미술학원 여시려는 신랑의 지인분 와이프께서 저더러 미술학원 선생을 권유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열심히 아~ 전 미술사학과라서 그림이랑은 인연이 먼데요~ 라고 설명을 해드려도 잘 이해를 못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미술사학관데 왜 그림을 안 그린다는 거지?라는 게 그 분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고정관념인 듯 합니다.
그럼 미술학과와 미술사학과 얘기를 먼저 시작해 볼까요?
미술학과는 크게 동양화과와 서양화과로 혹은 조소과, 회화과, 설치미술과,응용미술과, 디자인과, 산업디자인과, 그래픽과,....등등으로 예대이나 미대 쪽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 과들은
실.기.를 전제로 한 과들이라는 겁니다. 실기란 말 그 대로 그림을 그리든, 타블렛 작업을 하든, 돌을 깍든 흙을 주무르든 손과 감성을 이용한다는 것이지요. 미술학과에서도 물론 이론수업과 미술사에 관한 수업은 당연히 진행됩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이어나갈 수 있듯 유명한 작품들과 그 흐름을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것이 미술과에서 공부하는 것들입니다.
그럼 미술사학과는 무엇일까요? 일단 미술사학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실기 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당연하지만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사실, 미술사학과는 문과대계열입니다. 모르셨다고요? 그럼 사학과는 어떨까요? 사학과는 당연히 문과 계열입니다. 앞에 "미술"이 붙었다고 해서 미대라고 착각하시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분명 미술
史 학과 랍니다. 사학과과 역사를 공부하고 과거의 정치, 문화를 연구하는 곳이듯, 미술사학과에서는 미술의 역사, 즉 역사 속에 존재하는 미술품들을 통해서 그 흐름을 파악하고 시대적인 특징과 전파과정, 양식, 사상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인문학의 하나입니다. 쉽게 말하면 역사의 한 부류를 특화해 연구하는 학과라고 보시면 될 듯 싶네요. 미대에서도 당연 미술을 하는 만큼 미술사를 공부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주전공이 아니라 전공을 뒷받침해주는 교양으로써 공부하는 것이고, 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는 두 눈에 쌍심지 켜고 뚫고 파야 하는 학문입니다. 무척 힘든 학문이지요. 그리고 미술사학도나 교수님들 중에는 그림 못 그리시는 분들도 많습니다.(지금 경기대 전통문화대학원 교수님이신 제 고모는 E대 미술대학원 나와서 동대 미술사학 대학원 나와 문무를 모두 겸비하셨지만요) 미대를 다니다 턴해서 미술사학쪽으로 공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한국 미술사학과는 서양미술쪽 보다는 전통미술 즉, 불교미술을 많이 다루는 경향이 있다보니 불교미술 하시는 분이나 불교계쪽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모두라고 하면 당연 모순이지만 모든 분들이 다 미술사학을 한다고 해서 그림을 잘 그리시는 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희는 그림은 많이 보지만,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답니다. 그림 하나를 놓고 세세히 뜯어보면서 요모조묘 비교해 가는 학문으로 솔직한 말로는 이래저래 이 학문만큼 노가다인 학문을 없다고 생각됩니다. 미술사를 이해하려면 역사, 생활사, 종교, 음악, 대외관계, 정치 그리고 예를 들어 한국미술사를 한다고 해도 한국만 잘 아면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더 나아가서는 중앙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등의 범세계적에 걸쳐 두루두루 살펴야 하기 때문에 이것만큼 힘든 학문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미술사학을 뼈빠지게 하고 나왔다고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학강사, 박물관 큐레이터,공무원.....외엔 전무하다 시피 합니다. 요즘 미술사학과도 많아져서 이 좁은 낙타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적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미술사학을 하겠다고 문의를 하면, 일단 말려놓고 봅니다. 죽을만큼 공부해서 사회 나와서는 할 수 있는게 정해져 있는데, 그 정해져 있는 것도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여 취직하기도 힘들거든요. 설령 취직을 했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비정규직에(대학원까지 나와서)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고, 돈 들어가는 것(엄청 비싼 책값과 좋은 사진을 위한 필사적 노력들)에 비하면 그 댓가란 허무한 것이기까지 합니다. 다들 신모시기 양반 때문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우아~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그런 직업으로 오해하시고 계신 것 같은데, 뒤를 보면 월급을 쥐꼬리 하는 일은 산더미입니다.
그럼에도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뭐냐구요?
음, 제 경우엔 담겨있는 이야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청자 한 점, 불상 하나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그것을 듣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그 우아함에 반해 넋을 일고 바라볼 때도 있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감탄을 하기도 하고 많은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이 신비롭고 경이롭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이유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전해졌는지, 그 이야기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가끔 그 이야기를 추적하다보면 어떤 추리물이나 미스테리물들과도 견주어 볼 때도 그 흥미진진함은 뒤쳐지지 않아 이것저것 증거를 수집하고 그 끝에 결론을 추리해 내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일 겁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노력하겠지만-저도 다시 대학 새내기가 되어 새로 미술사를 공부한다는 느낌으로(어차피 결혼하고 애낳고 공부랑은 담싸다 보니 이미 다 잊어버렸습니다)하나하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미술사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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